1 life 2 live

숭덕사, 덕성서원 - 세종시 향토문화유산 제40호 [20.7.4] 본문

신나는 여행/세종

숭덕사, 덕성서원 - 세종시 향토문화유산 제40호 [20.7.4]

대희투 2020. 7. 15. 10:55

오늘 제가 방문한 곳은

세종시 향토문화유산 제40호인

'숭덕사''덕성서원'입니다.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집 근처에 향토문화유산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집 근처에 향토문화유산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숭덕사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외삼문 숭덕사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임헌회와

그의 제자 전우를 포함하여

모두 7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임헌회는 조선말 충청지역에서

유학을 연구하는 사람 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학자로 꼽힐 만큼

경학과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이이와 송시열의 학문적 계보를 이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차례 관직에 임용되었지만 모두 거절하다가

1865년(고종 2)에 호조참의를 지내고 1874년(고종 11)에 이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였으며,

그 후 대사헌, 사성 등을 역임한 후 낙향하여 후학들을 키웠다.

1876년(고종 13)에 죽은 뒤 내부대신 관직과 문경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전우의 본관은 담양, 자는 자명, 호는 구산·추담)·간재)이다.

1862년(철종 13) 21살에 아산에 있던 임헌회를 찾아가

사제의 연을 맺은 후 임헌회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하였으며,

전통 유학사상을 실현시키려 했던 유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1885년(고종 22) 관북지역의 유림들이 함경도 홍원에서 임헌회에 대한 제사를 지내오고 있었는데

남북이 분단됨에 따라 1978년 전국의 유림들이 뜻을 모아 그가 살았던 곳에 사당을 세우게 되었다.

1990년 '德星書院(덕성서원)'을 만들고 사당은 숭덕사라 하였다.

숭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정면에 ‘崇德寺(숭덕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내부에는 임헌회와 전우, 이재구, 김준영, 이유흥, 조홍순, 임헌찬 일곱 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주변은 삼문(三門)과 낮은 담으로 둘러져 있는데 삼문은 솟을 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설명은 이렇습니다.

 

아래 사진은 숭덕사의 입구인 '외삼문'의 사진입니다.

외삼문

 

숭덕사의 입구에는

숭덕사의 설명이 적혀있습니다.

 

위에서 작성한 내용이지만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안내판

 

외삼문을 들어와서 왼쪽에 보이는 사진입니다.

 

비석도 있습니다.

 

오른쪽에도 비석이 있습니다.

 

아래에 보이는 사진이 덕성서원의 모습입니다.

덕성서원

 

아래 사진이 내삼문인데

여기 안쪽에 숭덕사가 있습니다.

 

문이 잠겨있는 것으로 보아

평상시에는 개방이 안 되는 장소인 것 같습니다.

내삼문

 

평상시에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지만

지금 코로나 때문에 개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을 본받아

저도 학술 연구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느낌을 받은 장소였습니다.

728x90
반응형
Comments